고구려유물
조회수: 5294, 등록일: 2020.02.01 22:34









2020년부월간 연재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고구려의 남하 거점 백제성 뺏아 완벽하게 보축

청성산 ‘반월성’을 가다

프롤로그

지난 1979년도  입석마을에서 고비(古碑)가 발견됐다. 충주지역에서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보호운동을 벌여온 예성동호회 회원들이 찾은 비석이었다. 이 비석은 우물가에서 빨래판으로 사용됐던 것인데 예성동회회원들이 전면에 나타난 글씨를 확인한 것이었다.



당시 이 조사에 참가했던 장준식(충북도문화 재연구원장) 박사는 모교 은사인 단국대학교 정영호 박물관장에게 비 발견 소식을 전하고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며칠 후 정 박사는 조사단원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정 박사는 평소 충청북도 지역에 대한 조사를 열심히 해온 분으로 서둘러 내려온 것이다. 정 박사는 이보다 한 해 전인 1978년 이른 봄 단양군에서 진흥왕 척경비인 적성비를 찾아 역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바 있다. 입석마을에서 비를 보는 순간 정 박사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고졸한 예서로 쓰인 비문은 쉽게 판독이 되지 않았지만 한눈에 고대 비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장 보존조치를 한 정 박사는 며칠 후 국내 금석, 역사학회를 대표할 조사단을 구성, 현장에 내려왔다. 이때 필자도 취재기자로 현장을 찾았다. 서지학계를 대표하는 고 임창순 선생과 저명한 고대사연구 석학 분들이 팀을 이뤘다. 이들은 고비를 탁본하여 글자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몇 시간 토론 끝에 고비에 나타나는 고구려왕과 신라 매금, 전부대사자 등 고구려식 관직과 지명을 확인하여 역사적인 발표를 한다.




놀라운 발표였다. 현장에 있던 언론사 기자들은 본사로 급히 송고하기에 바빴다. 만주 지안에 하나밖에 없는 고구려비가 남한강변 중원 가금면에서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왜 고구려비가 이 마을에 세워진 것일까.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충주는 고구려의 국원성(國原城) 미을성(未乙省 혹은 未訖城)으로 기록되고 있다. 충주가 남방 공략의 주요한 거점이었던 것이다. 이 비석이 발견된 인근에는 탑평리 절터가 있다. 이 절터에서도 1970년대 후반 정영호 박사가 붉은 색의 연화문와당을 발견, 고구려 절터로 해석한 바 있다.



고구려비는 그 후 국보 제205호로 지정됐으며 현장에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게 됐다. 이 비의 발견으로 남한 지역에서의 고구려유적 조사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필자도 정영호 박사와 함께 약 20년간 여러 성을 답사했다. 주로 충북도 내 유적을 찾아 나섰다. 제천 장락사지, 청주 비중리사지, 구녀성, 천안 고려산성, 음성 망이산성, 괴산 청천도원리사지, 금강 개소문산성 등 이곳에서 고구려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 박사는 지난 2017년 4월 갑자기 고인이 되고 말았다.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전국을 찾아 문화유적을 조사하고 평가하던 열정은 아쉽게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적성비 발견 후 고 임창순 선생은 중앙일보 기고 글에 ‘정영호 박사의 위공(偉功)’이란 표현을 쓴바 있다. 몸소 발로 뛰어 많은 유적을 찾은 공은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기 부족함이 없었다. 전국 자치 단체에서 향토사에 대한 붐을 일으키고, 왕도 중심이 아닌 변방의 유적 중요성을 일깨운 분이다. 3년 전 필자는 강원도 양구 비봉산에서 고구려 지명을 알려주는 요은홀차(要隱忽次) 명문와편을 찾았다. 요은홀차는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오는 윤노성(閏奴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아! 여기에서도 고구려 역사와 흔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유적을 찾는 데 가장 기초적인 것은 기와 조각이었다. 고구려 기와는 다른 나라 유물보다 특별하다. 우선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기와등 무늬도 다양하다. 백제, 신라 기와가 단조로운 데 비해 고구려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무늬를 찍어냈다. 지금은 중국 땅인 고구려 국내성, 오녀성, 평양성 유적에서 찾아지는 무늬의 평와편이 남한지역 여러 곳에서 다수 발견 되는 것이다. 학계의 남한지역 고구려유적 발굴 조사는 서울 지역과 임진강, 남한강 유역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유적이 아차산성, 연천 고모루성 등이다. 이곳에서도 다수의 고구려식 와편이 찾아졌다.



이제 역사의 그늘에 묻혀 알아볼 수 없었던 고구려 유적을 찾아본다. 남한지역에서 지금까지 필자가 확인한 것은 약 30군데에 이른다. 제일 먼저 답사지로 선택한 것은 포천시 청성산에 있는 반월성(마홀성)이다. 이 성에서 고구려 와당인 ‘마홀(馬忽)’이란 명문이 찾아졌으며 고식의 백제성을 보축하여 고구려식의 방어 구조를 구축한 가장 주목되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충주 고구려비 탁본
마홀이란 지명의 역사적 비밀

<삼국사기> 권35 잡지에 포천의 지명이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본래 고구려의 마홀군이었 는데 경덕왕 16(757)년에 이름을 고쳐 견성군(堅城郡)이라 하였다(堅城郡 本 高句麗 馬忽 郡. 景德王 改名 今 抱州).’

‘마홀’은 큰 성이란 뜻이다. 이 지명은 만주일대에서 곧잘 확인되는 지명이다. 언어학자들의 견해를 빌리면 고구려말로 성, 읍, 동을 홀(忽; Khor), 골(Kor), 구루(溝婁; Kuru)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순 우리말인 ‘골’ ‘고을’과 통하는 말이다. 고구려의 국호인 ‘구려’ 역시 ‘최고의 고을, 최고의 골짜기’라는 의미로 해석 된다는 것이다. 일부 어문학자들은 마홀이 ‘물 골’을 음차한 것으로 ‘물이 많은 골짜기’ ‘물이 많은 고을’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포천에는 다수의 하천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포천의 독특한 지형과 경관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포천시는 분지 지형으로 주위에 높은 산지가 옹립되어 있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길을 모으고 있다. 고대 물길은 중요 교통로이며 군대의 진주 이동에 가장 필수적이다. 물길을 따라 군대가 옮겨가고 물길을 확보하기위해 성을 구축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남방 공략은 광개토왕(廣開土王)의 즉위와 더불어 단행됐다. 막강한 기병 수만 명이 주축인 고구려군은 파죽지세로 임진, 북한강변을 장악했다. 이 정벌전쟁에서 백제의 58개성과 700개의 촌이 고구려 지배 하에 들어갔다.

광개토왕의 남진 명분은 왜의 침공을 격퇴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신라는 백제와 왜(倭)의 침공에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지원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광개토왕은 수군과 기병 5만을 파견한 것이었다. 이 시기 포천의 반월성(청성산성)과 고모리 산성도 고구려 지배 하에 들어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반월성을 점령한 고구려군은 이 성의 이름을 ‘마홀’로 불렀다. 이 성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백제·신라군을 제어할 수 있으며 북에서 대규모 군사들의 남하를 도울 수 있는 요충이기 때문이다. 또 인근에 위치한 대규모성인 고모리 산성(古毛里山城, 당초 백제 구축)에서의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모리 산성은 백제 초기의 대성(大城)이다. 성지 연구가들은 성동리산성(城東里山城)이나 고소성(姑蘇城) 등과 함께 고구려군이 남양주(南楊州)를 거쳐 아차산성(阿且山城)과 풍납토성(風納土城)에 이르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에서 축성하였을 것으로 상정한다. 반월성은 백제 초기에는 북방 세력들을 막는 관방 역할을 했으나 고구려가 차지하고는 아단성(阿旦城)의 배후이며 백제, 신라의 전진을 방어하는 성지로 이용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못할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권37 잡지에 ‘비성군(臂城郡) 일운 마홀(一云 馬忽) 금 포천(今 抱川)’이라고 나오는 것이다. ‘비성’은 동국여지승람에 청주로 되어 있으며 김유신 장군의 고구려와 접전을 벌여 퇴치한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되어 온 것이다(<삼국사기> 권41 열전 제1 김유신 상에 …(전략)… 王遣 伊湌任永里 波珍飡 龍春 白龍 蘇 判 大人 舒玄等 率兵 攻 高句麗 娘臂城 云云). 일부 성지 전문가 사이에는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 군사를 대파한 낭비성 전투(629)를 청주가 아닌 포천의 마홀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이는 향후 더 깊은 연구가 따라야 할 곳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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